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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발해.' North and south states, Balhae.

발해

발해(渤海)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한반도 북부와 만주 남부와 동부, 연해주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 위치해 존속하였던 국가이다. 696년, 영주(營州)에서 거란(契丹)족의 반란이 일어나 이 지역에 대한 당나라의 세력이 쇠퇴해졌다. 옛 고구려의 장수인 대중상(大仲象,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인 대조영(大祚榮)은 이틈을 노려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규합한 후 영주에서 탈출하였다. 대조영은 이해고가 이끄는 당나라의 추격군과의 천문령 전투에서 승리한 뒤, 698년에 동모산(東牟山)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

제2대 무왕(武王)은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정하고, 강력한 대외정책으로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하였다. 무왕은 흑수말갈(黑水靺鞨)을 압박하였다. 또한 무왕은 장문휴(張文休)로 하여금 당의 등주를 공격하여 당에 대항하는 면모를 보였다.

제3대 문왕(文王)은 연호를 대흥(大興)으로 하였다. 문왕은 영토 확장보다는 주로 내치와 외교에 주력하였다. 문왕은 발해의 수도를 중경 현덕부(中京顯德府), 상경 용천부(上京龍泉府), 동경 용원부(東京龍原府) 순으로 옮기며 경제적, 외교적 이익을 얻는 데 주력하였다. 발해는 일본과의 외교관계와 교역을 도모하였다. 발해는 당과도 사신을 수시 파견하여 친당외교를 폈다. 그러나 신라와는 활발한 교류를 하지 않았다.

그 후 여러 왕들이 단명하다가, 제10대 선왕(宣王)은 영토를 넓히고 내치를 충실히 하여 발해 역사상 중흥의 시대를 열었다. 선왕대에 이르러 전국이 5경 15부 62주의 행정구역을 갖추었으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고 불릴 정도의 국세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발해는 제15대 왕인 대인선 (大諲譔) 의 치세에 멸망하였다. 10세기에 들어 세력을 확장하던 거란은 926년 발해를 공격하였고, 발해는 15대 220년간의 역사를 남긴 채 사라졌다.

발해는 문화적으로 고구려의 문화를 바탕으로 불교 문화와 당의 문화를 수용한 문화국가였다.

Balhae

Balhae was founded only thirty years after Goguryeo had fallen. It was founded in the northern part of former lands of Goguryeo by Dae Joyeong, a former Goguryeo general.[49] Balhae controlled the northern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much of Manchuria (though it didn't occupy Liaodong peninsula for much of history), and expanded into present-day Russian Maritime Province. Balhae styled itself as Goguryeo's successor state. It also adapted the culture of Tang Dynasty, such as the government structure and geopolitical system.

In a time of relative peace and stability in the region, Balhae flourished, especially during the long reign of the third Emperor Mun (r. 737-793) and King Seon. However, Balhae was severely weakened by the tenth century, and the Khitan Liao Dynasty conquered Balhae in 926.

No historical records from Balhae have survived, and the Liao left no histories of Balhae. Goryeo absorbed some Balhae territory and received Balhae refugees, including the crown prince and the royal family, but compiled no known histories of Balhae either. The Samguk Sagi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for instance, includes passages on Balhae, but does not include a dynastic history of Balhae. The eighteenth century Joseon dynasty historian Yu Deukgong advocated the proper study of Balhae as part of Korean history, and coined the term "North and South States Period" to refer to this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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